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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씻음에 대한 열망이 있습니까?
강동협 2022-03-13 추천 0 댓글 0 조회 470

죄씻음에 대한 열망이 있습니까?

 

2022313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설교

 

본문: 51:1-15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과 이렇게 인사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될 겁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마가복음 읽기를 통해 예수님의 사역과 예수님의 삶에 대하여 묵상하면서 더욱 예수님을 닮아가는 절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사순절 둘째 주일입니다. 둘 째 주일을 맞아서 회개에 대한 주제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설교 제목은 죄 씻음에 대한 열망이 있습니까?”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51편은 다윗이 부하장군 우리야의 아내인 밧세바를 범한 후에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어 그의 잘못을 지적했을 때 다윗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참회하면서 지은 다윗의 참회시입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다윗은 부하 장군의 아내를 빼앗았기 때문에 다윗은 엄청난 죄를 지었고, 다윗이 이렇게 참회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적어도 나의 죄는 다윗과 같은 명명백백한 심각한 죄가 아니고 대부분 내가 범하는 죄는 그리 심각한 죄가 아니라 아주 간단한 죄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입장과 상황을 바꿔서 다윗 시대의 상황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다윗과 같은 위치와 상황 가운데 있었다면 우리는 다윗처럼 참회하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다윗이 얼마나 겸손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한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밧세바라는 여인에게 홀딱 빠졌습니다. 밧세바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다윗이 밧세바에게 빠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바로 자신의 부하장수인 우리야의 아내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미 밧세바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바르게 판단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하인 요압장군에게 시켜서 가장 치열한 전쟁터에 우리야를 보내어서 우리야를 전사하게 합니다.

 

다윗의 계획대로 우리야 장군은 가장 치열한 전투에서 전사하고 맙니다. 다윗은 아무렇지도 않은척 우리야 장군은 전쟁에서 전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그의 아내 밧세바를 자신의 아내로 삼습니다. 다윗왕은 생각하기를 우리야 장군은 전쟁에서 죽었고, 이제 과부가 된 밧세바를 자신이 아내로 삼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단 선지자가 찾아왔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어느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데, 듣고 보니 그 사람은 아주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나쁜 사람이 자신의 백성인 것이 수치스러울 정도로 당장 죽여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나단 선지자의 이야기는 이러합니다.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자였고, 한 사람은 가난하였습니다. 부자에게는 소와 양이 매우 많았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그 암양 새끼는 그 주인과 주인 자식들과 함께 자라고, 주인이 먹는 것을 먹고, 주인이 마시는 잔으로 마시며, 주인의 품에 안겨 잠을 잤기 때문에 그 주인에게는 딸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그네가 부자 집에 오게 되었는데, 부자는 자신에게 온 나그네를 대접하기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 그 양 새끼를 잡았습니다.

 

이 얘기를 들은 다윗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릅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은 그 부자를 당장 죽이고,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주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 죽어야 할 그 부자가 바로 다윗임을 말하면서 다윗이 부하장군인 우리야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은 죄를 지적합니다. 그 책망을 받고 다윗이 자신의 죄를 참회하면서 지은 시가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51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느 왕이 자신의 잘못을 지적했다고 하여 참회하는 왕이 어디 있습니까? 더욱이나 여자를 빼앗기 위해 부하 장군을 죽이고, 그 아내를 빼앗은 왕이 그 잘못을 지적받았을 때 참회하는 왕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이 왕이 되어서 다윗과 같은 죄를 지었는데, 누가 그런 잘못을 지적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때 여러분은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참회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했겠습니까?

누군가 자신의 잘못을 지적했을 때 그 죄를 인정하고 참회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지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자신의 힘과 권력이 세면 셀수록 더욱 어려워집니다. 자신의 신분이 높으면 높을수록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인 왕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악한 일을 한 왕이라면 어떻게 그런 지적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이런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내걸어야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나단 선지자의 말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회개합니다. 말로만 하는 회개가 아니라 진심이 담긴 참회를 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51:1-6)

 

이 다윗의 참회시를 암송하다보면 다윗은 참 기본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잘못을 지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신다는 겁니다(6). 하나님은 자신의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서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자신의 죄가 숨겨지는 것이 좋은 것입니까? 아니면 자신의 죄가 드러나는 것이 좋은 것입니까?

우리 꿈나무들, 엄마 아빠 몰래 스마트폰을 하다가 빨리 들키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완전범죄를 하는 것이 좋습니까? 빨리 들키는 것이 좋습니다. 안들키고 완전범죄를 하면 날마다 밤을 새면서 게임을 하게 되고 결국 공부를 제대로 할 수가 없고, 매일 부모를 속이고, 부모에게 거짓말하는 불효자가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죄는 빨리 드러나는 것이 좋습니다.

이 죄는 암덩어리와 비슷합니다. 사람이 암에 걸리면 그 암이 빨리 발견되어야 합니까? 아니면 늦게까지 암덩어리가 발견되지 않고 숨겨져 있어야 합니까? , 빨리 발견되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래야 암을 고칠 수가 있으니까..너무 늦게 발견되면 암을 고칠 수가 없어요.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있는 죄는 빨리 발견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깨끗하게 죄 씻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죄를 지었는데도 발견되지 않고 숨겨져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최악입니다. 영혼이 서서히 죽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고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단절되어 가고 있어요. 그래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발견되지 않고 숨겨져 있다면 이것은 행운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 그렇다면 자신의 죄나 잘못을 지적해 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나쁜 사람입니까? 좋은 사람입니다. 자신의 죄나 잘못을 지적해 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자신의 죄나 잘못을 지적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을 영적으로 강건하게 해주는 은인으로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은 여러분의 적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디 우리가 그럽니까?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을 우리는 원수처럼 여기고, 그 사람을 미워하고 그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에게는 죄씻음에 대한 열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죄 씻음에 대한 열망이 없어요.

 

오늘 설교 제목인데, 죄 씻음에 대한 열망..이 죄 씻음에 대한 열망은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 우리에게는 마음의 진실함에 대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의 진실함에 대하 열망.

 

오늘 본문 6절 말씀을 보면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중심이 진실하기를 원하십니다. 중심이 진실하다는 말은 마음이 진실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이 진실하기를 원하시는데 정작 우리는 우리 마음의 진실에 대한 열망이 없습니다. 마음의 진실함에 대한 열망..이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혜를 가르치시는 것을 잘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12:15)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할 때 맞는 지적이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그 지적을 교훈으로 삼고 잘 받아 들일수가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에게는 정결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7절 말씀에,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에게는 정결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슬초로 정결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우슬초는 구약에서 나병환자를 정결하게 하는 것인데,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해달라는 기도는 나병과 같은 끔찍한 내 죄도 정결하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내가 그런 끔찍한 죄를 지었음을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자신의 잘못을 모릅니다. 자신의 잘못을 모르니 어떻게 정결하고자 하는 열망이 없습니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겠습니다. 라는 그 열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이런 열망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는 참회하면서 자신의 잘못에서 돌이킬 수 있었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정결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라는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 때 우리는 우리를 향해 책망하는 하나님의 소리를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습니다.

 

셋째로, 우리에게는 깨끗한 마음과 정직에 대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여기서 정한 마음이란 깨끗한 마음, 청결한 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청결을 원하십니다. 예수님도 산상수훈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다윗은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 마음의 청결을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직을 열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언가를 열망하게 되면 그에 따른 손실은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운동선수가 금메달을 열망하게 되면 그 메달을 따기 위한 모든 고된 훈련을 감당할 수가 있고, 모든 어려움도 극복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마음의 진실함에 대한 열망과 정결함에 대한 열망, 그리고 깨끗한 마음, 청결한 마음에 대한 열망이 있다면 우리도 모든 어려움들을 넉넉하게 잘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나를 지적하는 소리에도 긍정적으로 반응할 수가 있고, 자신을 비방하고 험담하는 소리에도 지혜롭게 반응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다윗에게는 그런 세 가지 마음이 있었습니다. 마음의 진실함에 대한 열망, 정결하고자 하는 열망, 깨끗한 마음과 정직에 대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잘못을 책망하는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하나님 앞에 참회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다윗에게 그런 마음이 없었더라면 다윗은 나단 선지자를 죽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더 큰 죄를 지었을 것이고, 하나님께로부터 사울과 같이 버림받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누구나 다 다윗과 같이 중한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 다윗과 같이 참회할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이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아들여서 참회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에게는 죄 씻음에 대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마음의 진실함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 정결함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 깨끗한 마음과 정직에 대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자신의 권세와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단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참회할 수 있었습니다.

 

진실한 마음을 갖기를 원하십니까?

정결하기를 원하십니까?

깨끗한 마음과 정직에 대한 열망이 있습니까?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열망이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주 앞에 나가 참회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설수가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의 죄가 드러나거나 다른 사람이 우리의 잘못을 지적할 때 우리는 매우 심각한 관계의 위기에 빠집니다. 자신을 위하여 하는 권고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을 위해 충고하는 사람조차도 미워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죄 씻음에 대한 열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죄씻음에 대한 열망은 세 가지로 나타나는데

진실한 마음에 대한 열망, 정결에 대한 열망, 깨끗한 마음과 정직에 대한 열망으로 나타납니다.

2022년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 모두 이 세 가지 열망을 갖고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진실한 마음에 대한 열망, 정결에 대한 열망, 깨끗한 마음과 정직에 대한 열망을 갖고, 주 앞에 잘못이 드러났을 때 즉시 참회하며 나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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