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시편37:1-11 개역개정
-
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2.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누군가 나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할 때
2022년 2월 6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 설교
본문: 시 37:1-11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이렇게 인사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될 겁니다.
설 명절을 잘 보내셨습니까? 저는 이번 설에 제주도에 가서 어머니를 뵐까 생각도 했었지만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설에는 제주도에 가지 않고 영상으로 인사를 드리기로 하고, 저희 집에서 설 명절을 맞았습니다. 11시에 가정예배 순서지에 따라 예배를 드리고, 세배를 했습니다. 먼저 우리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으로부터 세배를 받고, 한 사람 한 사람 덕담을 나누고, 우리 부부가 서로 맞절을 하고, 아이들이 서로 맞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계신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화상으로 세배를 하고, 태백에 있는 처가 형님들께 세배를 하고, 제주도에 계신 어머니와 형제들과 영상으로 세배를 하고 덕담을 나누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설 명절에 좋은 시간들을 보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명절 첫 날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이 긴 장문의 글을 보내왔습니다.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을 저에게 알리고 기도해달라는 문자였는데, 간단하게 말하면 너무 힘들다는 겁니다. 부산에서 서울로 임지를 옮겼는데 그 교회에 가서 보니 행정으로 일하라고 했는데, 금계라는 닭들과 개집을 돌보고, 교구 사역자와 다른 문으로 들어가서 사찰 집사님도 꺼릴만한 일을 시키고, 도저히 목회자가 하는 일이 아닌 일들을 시켜서 그 교회를 도망치듯 나와서 지금은 다른 지방에 와 있는데 이 교회도 목회자들이 1년도 못버티고 그만두거나 쫒겨 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은 현재 몸도 마음도 많이 상해있고, 한의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으면서 하루하루 버티면서 사역을 하는데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그런 문자입니다.
둘째 날에는 제가 아는 또 다른 목사님이 전화가 왔습니다. 이분은 지방의 어느 대형교회 부목사로 사역하고 있는데, 인간관계 속에서 너무 힘들다는 겁니다. 함께 사역하는 목회자들과의 관계도 너무 힘들고, 자신을 모함하고 험담하는 성도들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 설 명절에는 부모님을 찾아뵙지도 못하고 가족들이 기도원에 가서 머물다가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설 명절이기에 인사도 할 겸 저에게 전화가 왔는데 제가 조언 아닌 조언을 했어요. 그랬더니 목사님처럼 조언해주는 분이 자기 옆에는 없답니다. 그런데 목사님 말씀이 백번 맞는 말씀이기는 한데, 참 어렵네요. 그러면서 울더라고요.
오늘 본문 시편 37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말이 아닙니다. 이런 조언을 들으면 제 후배 목사님이 저에게 말한 것처럼 말할 것만 같습니다.
“백번 맞는 말씀인데 참 어렵네요”
어떻습니까?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이 말씀을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면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신앙 인격이 아주 훌륭하거나 아니면 악을 행하는 자 때문에 고통을 당해 보지 않았거나. 둘 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말 자신에게 악하게 대하는 그런 사람을 겪으면서 그 사람에게 고통을 당한다면 제 후배 목사님처럼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목사님 말씀처럼 하는 것이 맞기는 한데 참 어렵군요. 그러면서 울겠지요.
아..참 힘듭니다. 해결방법은 있는데 사람이 감정이 있고, 감정이 상하면 그 방법대로 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이런 것은 예수님과 상담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예수님 말씀이 맞기는 한데 참 힘드네요.”
여러분, 이러면 예수님도 힘들어 질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의 말씀은 들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조언을 하는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거든요. 예수님이 누구입니까? 나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리신 분이거든요. 나를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낮고 낮은 곳으로 오셔서 나를 죄악가운데서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분이거든요. 그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 말씀이 맞기는 한데 제 자존심을 버리기가 참 힘드네요.”
이런 말을 어떻게 합니까?
오늘 본문 시편 37편 1절도 그러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시편 37편은 다윗의 시인데, 이 시는 다윗이 그냥 듣기 좋으라고 지은 시가 아닙니다. 다윗이 이미 다 그런 경험을 다 한 겁니다. 다윗은 우리가 평생을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모든 악한 사람을 다 만났습니다. 부하로부터 배신도 당하고, 아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나라 최고의 권력자인 왕으로부터 도망을 다니면서 자신에게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죽을 뻔도 하고,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 미친 척도 했어야 했습니다. 자신에게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의 형통을 지켜보고 살았습니다. 억울해도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어요. 화가 나도 그렇게 화가 날수가 없고, 불평을 하고, 시기를 해도 하늘처럼 쌓아놓고 해도 모자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경험을 한 다윗이 이렇게 말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런데 여러분,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다윗이 불평했을까요? 안했을까요? 왜 불평하지 않았겠습니까? 했겠지요. 다윗도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고, 감정을 갖고 있는데 불평을 왜 안했겠습니까? 자신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이 있는데 불평하지 않는 사람이 사람입니까? 불의를 행하는 자가 형통한 것을 보고 밥이 제대로 넘어갑니까? 화가 나고, 세상 왜 이렇게 불공평하냐..그러지 않겠어요? 다윗도 그랬을 겁니다. 그런데 다윗은 왜 이런 말을 하냐고요? 말도 되지 않는 말..말이야 옳아 보이고 좋아 보이지요.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런데 다윗이 다 경험하고 보니까
악한 자가 형통한 것을 보고 배 아파하고, 시기하고, 분을 내고, 화도 내고, 불평해 보니까 그것이 결국 좋지 않더라. 그렇게 해보니까 오히려 악을 만들더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 말씀, 7,8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고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고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다윗은 자신에게 악하게 하는 사람.. 수도 없이 만났어요, 사울 왕을 피해 어디로 도망가야만 했느냐. 블레셋 땅으로 도망갔습니다. 왜 블레셋 땅으로 갔습니까? 유대 땅에는 자신이 숨을 곳이 없어요. 어디를 가든 사울왕의 군대가 쫓아와요. 자신이 블레셋으로부터 나라를 구했는데 유대 땅 그 어디를 가도 사울 왕이 쫓아왔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밀고자가 있다는 말입니다. 백성들이 자신을 밀고한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배신해요. 그래서 적군인 블레셋 땅으로 가서 미친 척해서 겨우 살아났습니다. 나중에 왕이 되었을 때는 아들로부터 배신당했지요. 신하들로부터 배신당했지요. 아들과 신하들로부터 배신 당하여 쫓겨날 때 얼마나 억울한지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울면서 도망쳤습니다. 어찌 불평하지 않겠습니까? 불평이 뭡니까. 불평정도는 양반이지요. 이를 갈고 저주했겠지요. 내 나중에 다시 돌아오기만 하면 다 죽이겠다고..그렇게 하지 않은 것 만해도 훌륭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내린 결론은 무엇인가?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을 악하게 하는 사람에게 악으로 대해 보십시오. 악은 악을 만들 뿐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해 보십시오. 불의를 행하는 자들의 형통을 보고 시기해 보십시오. 불평은 하나님의 은혜를 갉아먹는 좀입니다. 시기와 불평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를 시기한다는 것은 자신의 환경에 대하여 불만족하는 것이고, 이 불만족은 불평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불평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먹습니다.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끼어들 자리가 없습니다.
마음껏 불평하고, 마음껏 시기해 보십시오.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보니까 악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다 심판하시더라는 겁니다.
2절 말씀,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9,10절 말씀,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자, 그러면 우리가 악인들 때문에 힘들어하고 고통을 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누군가 나를 힘들게 하고 누군가가 나를 모함하고 험담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누군가 나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할 때”
여러분 주위에 그런 사람 있지요? 원래 원수는 가장 가까이 있는 법입니다. 멀리 있는 사람은 원수가 아닙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내 원수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내 가족이 원수고, 내 친구가 원수고, 목사님이 내 원수고, 성도가 내 원수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여러분의 남편이고, 아내고, 자식이고, 부모님이 여러분을 힘들게 합니다. 여러분의 친한 친구가 여러분을 힘들게 하고, 여러분의 친척이 여러분을 힘들게 하고, 다른 교회 교인이 아니라 함께 예배하는 더사랑교회 교인이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여러분, 강동협 목사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양곡교회 성도가 강동협 목사를 힘들게 합니까? 문창교회 성도가 나를 힘들게 합니까? 상남교회 성도가 나를 힘들게 합니까? 아니면 바로 옆에 있는 큰꿈교회 성도가 나를 힘들게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더사랑교회 담임목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다른교회 성도가 아니라 더사랑교회 성도, 바로 여러분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겁니다.
남의 자식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식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겁니다. 남의 부모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부모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겁니다. 남의 남편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고, 남의 아내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남편이 나를 힘들게 하고, 내 아내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원수는 가장 가까이 있어요.
여러분, 힘드시지요? 그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십시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고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해야 합니다. 3절 상반 절 말씀,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누군가가 나를 모함하고, 힘들게 한다면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십시오. 우리가 의지할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선을 행하십시오. 로마서 12:21절 말씀처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처럼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악에게 지는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방법은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으면 시원하겠지요? 그러나 오히려 악을 악으로 갚으면 우리 영혼이 죽습니다. 악인이 악을 행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런데 선인이 악을 행하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악을 행해 보십시오. 더 괴롭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사람을 미워해 보십시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괴롭습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사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의 삶인지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더 괴롭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다는 그 죄책감이 더 커요. 그래서 그의 영혼이 점점 더 병들어갑니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님을 떠나요.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악인을 정리하십니다. 아무리 찾아도 악인이 없어져요. 그 악한 부인이 사라지고 착한 아내가 있습니다. 그 악한 남편이 사라지고 인자한 남편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십시오. 그러면 그 버릇없고 나쁜 며느리는 사라지고 착하고 이쁜 며느리가 있고, 고약하고 나쁜 시어머니는 사라지고 인자한 시어머니만 있습니다.
옛날에 시어머니가 너무 고약하게 굴어서 하루라도 맘 편하지 않고 도저히 견딜 수가 없던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하는 일 마다 사사건건 트집이고 하도 야단을 쳐서 나중에는 시어머니 음성이나 얼굴을 생각만 해도 속이 답답하고 숨이 막힐 지경이 되어 버렸어요.
시어머니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겠다는 위기의식까지 들게 되자 이 며느리는 몰래 어떤 선지자를 찾아갔습니다.
선지자는 이 며느리의 이야기를 다 듣고는 아주 훌륭한 처방이 있다고 합니다.
눈이 번쩍 뜨인 며느리가 그 처방이 무엇이냐고 다그쳐 묻습니다.
선지자는 시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었어요.
며느리는 “인절미”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는 앞으로 백일동안 하루도 빼놓지 말고 정성을 다하고 항상 새것으로 인절미를 만들어서 아침, 점심, 저녁 으로 정성껏 드리면 시어머니가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죽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며느리는 신이 나서 돌아왔습니다. 찹쌀을 정성껏 씻고 잘 익혀서 인절미를 만들어 정성껏 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처음에는 "이 년이 곧 죽으려나, 왜 안하던 짓을 하고 난리야 ?” 했지만
며느리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계속 하루 세 번 인절미를 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그렇게 보기 싫던 며느리가 매일 매일 자기가 좋아하는 말랑말랑한 인절미를 해다 바치자
며느리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변하여 야단도 덜 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두 달이 넘어서자 시어머니는 하루도 거르지 않는 며느리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이 되어서 동네 사람들에게 해대던 며느리 욕을 거두고 반대로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게 되었더랍니다.
석 달이 다 되어 가면서 며느리는 사람들 앞에 자신을 야단치기는커녕 칭찬하고 웃는 낯으로 대해 주는 시어머니를 죽이려고 하는 자신이 무서워졌어요.
이렇게 좋은 시어머니가 정말로 죽을까봐 덜컥 겁이 났습니다.
며느리는 있는 돈을 모두 싸들고 선지자에게 달려가 "내가 잘못 생각했으니 시어머니가 죽지 않고 살릴 방도만 알려 주면 있는 돈을 다 주겠다"며 선지자 앞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선지자는 빙긋이 웃으며
"미운 시어머니는 벌써 죽었지 ?”라고 했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십시오.
둘째로, 우리는 땅에 머무는 동안 하나님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아야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성실함을 믿어야 합니다.
3절 하반절을 보면,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 지어다”
성실하다는 말은 우리말로 미쁘다는 말입니다. 미쁘다는 말은 믿음직하고 진실함을 말합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힘들게 하고 악하게 대할 때 하나님의 미쁘심을 먹을거리로 삼으십시오. 날마다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직하고 진실한 분이십니다. 누군가가 나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할 때마다 날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실하심, 신실하심, 미쁘심을 먹을거리로 삼고 날마다 먹으십시오. 배부르게 먹으십시오. 그것을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하나님의 성실을 먹는 것은 보약을 먹는 것입니다.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하나님은 믿음직하고 진실하시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하나님의 미쁘심을 믿으십시오. 그 미쁘심의 보약을 먹을 때마다 괴로움과 고통이 줄어듭니다. 이것 먹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 먹지 않고 지금의 괴로움과 고통을 버틸수 있다면 그 사람이 당하는 괴로움과 고통은 그리 큰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큰 괴로움과 고통이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이 땅에 머무는 동안 하나님의 성실하심, 미쁘심의 보약을 먹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오직 여호와를 기뻐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4절 말씀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여러분 마음에 소원 있지요? 어떤 소원이 있습니까?
오늘 말씀 보니까 여호와를 기뻐하면 여호와께서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신다고 합니다. 제가 더사랑교회 담임목사로서 제 마음에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교회 부흥! 아닙니다. 우리교회 큰 교회 되는 것! 아닙니다.
제가 더사랑교회 담임목사로서 단 한가지 소원이 있다면 여러분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집에서 싸우지 말고, 부부간에 서로 사랑하면서, 부모님 잘 모시고, 자녀를 말씀과 기도로, 사랑으로 잘 양육하고, 자녀들, 부모님 공경하고, 형제간에 서로 우애 있는 모습으로, 그래서 주일날 모두 손잡고 다 같이 나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그거 하나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헌금을 많이 하는 것 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전도하는 것 원하지 않습니다. 물론 전도하면 좋습니다. 그러나 제가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다 못해도 됩니다. 새벽기도 나오지 않아도 좋습니다. 수요성경공부 나오지 않아도 좋습니다. 전도하러 나오지 않아도 좋습니다. 노숙인 도시락 봉사 나오지 않아도 좋습니다. 다 좋아요. 그러나 행복하십시오. 가족을 행복하게 하십시오. 남편 행복하게 하고, 아내 행복하게 하고, 자녀 행복하게, 부모님 행복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러분이 행복하게 사십시오. 이것이 제가 더사랑교회 담임목사로서 제 소원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소원이 있겠지요.
그러면 이 소원이 어떻게 하면 이루어질 것인가?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여호와를 기뻐하라..여호와를 기뻐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을 보면 인간의 최고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인간의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인간의 최고의 목적인데,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무엇일까?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은 모든 즐거움과 기쁨을 여호와에게서 찾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편 1편 2절에 복있는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면서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는 것, 그의 기쁨을 여호와의 율법 안에 두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의 기쁨을 찾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와를 기뻐한다는 것은 모든 기쁨과 즐거움을 여호와에게서 찾는 사람, 이 사람이 여호와를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여러분의 기쁨을 무엇에서 찾았고, 누구에게서 찾았습니까? 여러분의 기쁨은 무엇에 두고 있습니까? 돈에 여러분의 기쁨을 두고 있습니까? 자녀에게 두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업성공에 여러분의 기쁨을 두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기쁨의 원천은 무엇이며, 여러분의 기쁨의 원천은 누구입니까?
여.호.와.
우리의 기쁨의 원천을 하나님께 두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소원을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거나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고,
첫째,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합시다.
둘째,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읍시다.
셋째, 우리의 기쁨의 원천을 하나님께 둡시다.
이런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밝은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누군가 나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쁨의 원천을 하나님께 두며 이 모든 어려움을 잘 이겨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