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창세기45:1-8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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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2.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하나님이시라
2022년 1월 30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 설교
창 45:1-8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이렇게 인사하겠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될 겁니다.
네, 여러분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지 모릅니다. 서로에게 힘이 되고,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힘들 때 지팡이가 되어주고, 힘들 때 서로 격려하고 기도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사실은 정말 소중합니다. 지금 설연휴가 시작되면서 고향을 찾아 예배하는 성도들도 있는데, 서로 설날 인사를 다시 한번 하도록 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새해에는 돈도 많이 버시고, 자녀들도 다 건강하고, 무엇보다 마음이 평안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많이 누리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설날이 되면 흩어졌던 가족들이 다 한 자리에 모입니다. 어릴 적에는 다 같이 한 집에서 살아가다가 어떤 사람은 대학 입학하면서 집을 떠나고, 어떤 사람은 일자리를 찾아서 집을 떠나가고, 어떤 사람은 결혼하면서 집을 떠나가고, 그리고 각자가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다보면 형제간에도 서로 만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세월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다가 명절이 되면 팔도에 흩어졌던 가족들이 부모님이 계신 고향집으로 모여서 형제간에 좋은 만남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래서 명절이 좋은 것 같습니다.
오늘은 설 명절을 맞아서 가족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요셉 가족’입니다. 요셉의 가족은 어릴 적부터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야곱에게는 2명의 부인과 2명의 첩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이 4명의 여인으로부터 12명의 아들과 딸 하나를 낳았습니다. 첫째 부인 레아에게서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 6명의 아들과 외동 딸 디나를 낳았고, 둘째 부인 라헬의 몸종인 빌하에게서 단과 납달리 두 형제를 낳았고, 첫째 부인 레아의 몸종인 실바에게서 갓과 아셀을 낳았고, 둘째 부인 라헬에게서 요셉과 베냐민을 낳았습니다. 이렇게 4명의 여인으로부터 13명의 자녀를 낳았으니, 이 가족이 얼마나 복잡하겠습니까?
게다가 자녀를 낳은 여인은 4명인데, 야곱은 유독 라헬만을 예뻐했으니 그 부인들의 시기와 질투는 어떠했겠습니까? 그 뿐만이 아닙니다. 야곱은 12아들 중에도 유독 라헬이 낳은 요셉만을 예뻐했습니다. 그러니 그 형제들이 얼마나 요셉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얼마나 미워했는지 모릅니다. 형들이 동생 요셉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으니 참.. 그 집도 보통 복잡한 집이 아닙니다. 오늘날 요셉의 가정이 우리 교회에 있다면 아마도 최고로 복잡하고, 수습이 안되는 가정일 것입니다. 우리는 형제간에 아무리 좋지 않아도 죽이고 싶은 정도까지는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요셉의 형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형들이 동생 요셉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동생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 이십에 팔아버리고, 숫 염소를 잡아서 동생 요셉의 옷에 피를 적시고는 아버지에게 가서 요셉이 들짐승에게 잡아 먹혔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세상에 이런 형들이 어디 있습니까? 요셉의 입장에서 보면 참 어이없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믿었던 형들에게서 비정하고 치사하고 더러운 일을 당한 것입니다. 아마 오늘날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고 한다면 엄청난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되고, 청와대에 청원이 빗발치듯이 들어갈 겁니다. 요셉의 입장에서 보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거의 0%의 확률 게임인데 거기에 자신이 걸려든 것과 같은 불행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불행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친위대장인 보디발에게 팔아버립니다. 보디발 장군 집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요셉이 보디발 장군의 인정을 받아서 그 집의 가정총무가 됩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보디발 장군 부인의 유혹을 거절한 댓가로 요셉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번에도 요셉은 억울해도 너무 억울합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으니 어떻게 보면 요셉의 입장에서 보면 인생 꼬여도 엄청 꼬이는 것입니다.
형제들로부터 미움을 받아서 노예로 팔려간 것도 거의 0%에 가까운 억울한 일인데, 보디발 장군의 부인으로부터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으니 이 얼마나 억울합니까?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벌어집니다. 후에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요셉이 갇힌 감옥은 친위대장의 집에 있는 정치범이 수용되는 감옥이었습니다. 만약에 민간인 요셉이 어떤 잘못을 해서 감옥에 갔다면 요셉이 갇힌 감옥은 정치범의 감옥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을 감옥에 가둔 사람이 바로왕의 친위 대장이었기 때문에 보디발 장군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집에 있는 감옥, 정치범 감옥에다가 요셉을 가둔 것입니다. 이 곳에 애굽 왕 바로의 숱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이 죄를 지어서 이곳에 갇히게 되었는데, 요셉이 두 사람의 꿈을 해몽해 주었는데, 그 해몽대로 술맡은 관원장이 다시 복권이 되어서 애굽 왕 바로의 측근이 됩니다. 만 2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꾸게 되었는데, 그 꿈을 해몽하려 하였지만 애굽 전역에 바로왕의 꿈을 제대로 해몽하는 사람이 없어요. 마침 술맡은 관원장이 과거 자신의 꿈을 해몽한 요셉이 생각났고, 요셉을 불러서 바로왕의 꿈을 해몽하게 합니다.
요셉이 그 꿈을 해몽해 보니 앞으로 애굽 온 땅에 일곱해 풍년이 있겠고, 그 풍년이 지난 다음에는 일곱해 흉년이 날 것인데, 그 흉년이 얼마나 극심한지 앞에 7년 동안 있었던 풍년이 기억에 나지 않을 정도로 기근이 심하게 될 것이다.
그런즉 왕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서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고, 나라에 감독관을 두어서 그 일곱 해 풍년에 모든 곡물을 거두어서 앞으로 임할 7년 흉년을 잘 대비하면 애굽 땅이 이 흉년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셉이 꿈 해몽뿐만 아니라 그 방법까지 알려주는 것을 보고 바로 왕은 요셉의 지혜를 알아보았습니다. 이 사람 보통 사람이 아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수 있으리요”(창 41:38)
그러면서 요셉에게 애굽의 총리 자리를 맡기는데,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창 41:39,40)
요셉이 그렇게 애굽의 총리가 되고, 7년 풍년을 맞아서 곡식을 창고에 쌓아두면서, 7년 기근을 대비했습니다.
여러분, 말이 7년 기근이지요. 한 해 기근이 나면 먹을 것이 다 떨어져서 2년째에 벌써 여기저기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수두룩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한 군데 요셉이 총리로 있는 애굽에만 양식이 있는 것입니다. 애굽의 백성만 아니라 주위 여러 나라에서도 애굽으로 양식을 구하러 오는 것입니다.
가나안에 있었던 야곱에게도 이 소식이 들렸습니다. 애굽에 가면 양식이 있다더라. 그래서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냅니다. 요셉을 팔았던 그의 형들이 이제 요셉에게 오게 된 것입니다. 요셉의 입장에서 보면 철천지 원수가 제 발로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 요셉에게 그의 형들은 철천지원수가 아닙니다. 아니, 자신을 노예로 팔아버린 사람이면 철천지원수가 아닙니까? 맞지요? 여러분 같으면 그런 사람을 가만히 두겠습니까? 철천지원수로 알고 이를 갈면서 원수로 삼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그의 형들을 어떻게 대합니까?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이 얘기를 듣고 그의 형들은 깜짝 놀랍니다. 무슨 말인가? 정말 그러한가?
땅바닥에 엎드려서 총리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하다가 그 얘기를 듣고는 고개를 들어서 요셉을 보는 순간 그들은 깜짝 놀랍니다. 자신들이 돈을 받고 팔아버렸던 동생 요셉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들은 반가움보다 두려움이 앞섰을 것입니다. 이젠 완전히 죽었다. 굶어죽기 전에 칼에 맞아 죽겠다. 두려움에 벌벌 떨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입에서 천사의 말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 창 45:5-8절까지 말씀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아멘!
여러분, 요셉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17살, 그 청소년 시기에 인신매매 당했어요. 그것도 다른 사람이 판 것도 아니고 형들이 팔아버렸어요. 그 충격이 얼마나 컷겠습니까? 그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배신감과 원망과 저주..그런 것이 뼈 속 깊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렇지 않았어요. 요셉은 성인군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보십시요.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와..이런 말을 어떻게 합니까? 이런 말은 만들래야 만들 수 없는 말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입에서 그런 말들이 줄줄줄 나와요.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여러분, 이런 말을 어떻게 하냐고요..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가? 따라 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이런 말을 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보디발 장군의 집에 노예로 있을 때에도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니까 요셉은 달라도 다른 노예들과 달랐습니다.
창세기 39장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요셉이 형통했다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비록 요셉은 보디발 장군의 집에 노예로 팔려왔어도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누구를 원망하거나 누구를 저주하거나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그 모든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셉의 행동이 다른 노예들과는 달라도 보통 다른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그 모습을 지켜본 보디발 장군의 눈에 들었어요. 요셉을 딱 보니까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에요..생각도 다르고, 행동도 다르고, 마당을 쓸어도 다른 노예들이 마당 쓰는 것과 다르고, 한 마디 말을 해도 다른 노예들과는 급이 달라요..생각도 패배적이지 않고, 부정적이지 않고 딱 보니까 달라도 너무 달라요.
‘아, 이 아이는 보통내기가 아니다’
보디발 장군이 잘 보고 있다가 그를 가정총무로 삼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디발 장군 집의 집사가 된 것입니다. 그 집의 집사가 되어서 가정의 모든 일들을 요셉에게 다 맡긴 것입니다.
요셉의 최고의 전성기가 언제인가? 저는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노예생활을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때 요셉의 신앙이 꽃피우고 있을 때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신앙이 점점 자라고 있어요.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요셉의 생각이 달라지고, 요셉의 행동이 달라지고, 요셉의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요셉의 신앙의 절정은 바로 보디발 장군의 부인이 요셉을 유혹할 때였습니다. 보디발 장군이 보기에도 요셉이 다른 사람과는 다르잖아요.
지혜롭고, 똑똑하고, 생각이 바르고, 행동이 다르고, 젊어요. 그러니까 보디발 장군의 부인이 보기에도 요셉이 너무 마음에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을 유혹합니다.
그 때 요셉이 자기를 유혹하는 보디발 장군의 부인에게 무엇이라 말합니까?
“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 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 39:9)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다시 읽어보았어요.
이 문맥을 보면 이렇게 말해야 문맥에 맞습니다.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 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주인에게 죄를 지으리이까” 이렇게 해야 문맥에 맞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그러니까 요셉은 보디발 장군의 집에 있으면서 늘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행동을 하나님 앞에서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게 넘쳤어요. “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 은혜가 넘쳤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차고 넘친 것입니다.
요셉이 은혜를 받으니까 형들로부터 배신당하고, 인신매매 당하여 종살이 하는 모든 상처와 아픔들이 다 아물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요셉은 자신의 상황에 대하여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팔아버린 형들을 원망하지도 않았고, 현재 자신의 상황을 불행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사람이 정말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 신앙이 독실한 사람인가?
지금까지는 주일성수를 잘하는 사람, 십일조를 비롯하여 헌금을 잘하는 사람, 교회 봉사를 잘하는 사람, 전도를 하는 사람, 새벽기도회를 하는 사람, 수요성경공부나 금요일 기도회 빠지지 않고 잘 나오는 사람,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믿음이 좋은 사람이다. 신실한 사람이다. 신앙이 독실한 사람이다. 이렇게 평가를 했어요.
그런데 여러분, 정말 그러합니까? 믿음이 좋은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현재 자신의 상황을 원망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원망하지 않습니다. 왜 원망하지 않습니까? 현재 이 상황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상황이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내가 고통 받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상황도 하나님이 인도함 가운데 처해진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죽을 것만 같고,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상황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이런 상황이 나에게 벌어질 일이 없다고 믿고,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상황을 허락하셨을까? 내가 이런 상황 가운데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이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이 모든 고난과 환경을 살아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절대로 원망하지 않습니다. 원망은 불신자가 하는 것이고, 원망은 패배자가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당신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야” 라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부모가 못나고 잘못해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부모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배우자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서로 남 탓을 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분명한 이유가 있음을 믿기 때문에 이 어려움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극복해 냅니다.
원망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자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이 나의 삶을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은 어떤 환경 가운데 있을지라도
설령 내가 사업에 망하고, 가정이 파탄이 나고, 내가 병들어 죽게 될 지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는 사람은 절대로 남 탓 하며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늘 성경본문의 요셉이야말로 믿음이 좋은 사람이고, 신앙이 독실한 사람입니다. 요셉의 믿음을 보십시오.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요셉은 형들이 자신을 팔았다고 해서 형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형들을 통해서 자신을 애굽에 보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을 애굽에 먼저 보내어서 애굽의 백성을 살리고, 온 세상의 기근으로부터 야곱의 후손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야곱의 후손들을 세상에 두시려고 자신을 먼저 보냈다고 말합니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형들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꿈나무 여러분, 여러분이 진실로 하나님을 믿고 있다면 앞으로 여러분의 입술에서 원망을 제거하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다면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여러분의 마음과 입술에서 불평을 제거하십시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사자 굴속에서도 살아남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코로나도 걸리지 않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사업도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병도 걸리지 않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교통사고도 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니까 사업도 망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니까 교통사고도 나는 것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니까 병도 걸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생사화복! 하나님께 달려있고, 우리의 모든 성공과 실패도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우리가 살아있는 한, 우리의 입으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한 어떠한 상황에 닥치더라도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나는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항상 긍정적이고, 항상 밝고, 웃음 잃지 않고, 나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이 상황도 하나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에 반드시 이 어려움을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있음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요셉은 그렇게 해서 애굽의 총리가 되고, 온 세상에 퍼진 기근으로부터 세상을 구원하는 구원자가 된 것입니다.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하나님이시라”
평생 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믿습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오직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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