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마태복음26:69-75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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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70.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71.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7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73.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74.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신앙인의 삶
2021년 4월 18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 설교
마 26:69-75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신앙인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신앙인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를 실제적으로 인정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존귀하게 여겨서 그 사람의 죄악으로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걸작품을 사랑으로 잘 닦아서 반짝 반짝 빛나게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를 행위로 인정하는 사람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신앙인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하나님의 섭리는 양쪽 수레바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오른쪽 수레바퀴라면 하나님의 섭리는 왼쪽 수레바퀴입니다. 수레바퀴 어느 한쪽이라도 없으면 수레는 존재이유가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창조가 없다면 하나님의 섭리도 없고, 하나님의 섭리가 없으면 마치 집을 지어놓고 관리하지 않은 폐허가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섭리가 없는 창조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신앙인은 반드시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일까요? 무엇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섭리라고 할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피조물과 피조물의 모든 행동을 보존하고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11번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이 지극히 거룩하고 지혜롭고 능력있게 모든 피조물과 피조물의 모든 행동을 보존하고 통치하시는 것입니다(소요리문답 11)” 이렇게 정의합니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 5장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가장 위대한 것에서부터 가장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조물과 행동과 물질을 보호하시고 지도하시고 처분하시고 통치하신다”
그리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하나님의 섭리를 또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란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마치 자신의 손으로 하듯이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여전히 보존하고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능력으로 가장 거룩하고, 가장 지혜롭고, 가장 능력 있게,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으로 하듯이 하늘과 땅의 모든 피조물들 곧 가장 위대한 것부터 가장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조물과 피조물의 모든 행동을 보존하고 다스리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우연이라고 생각되는 것까지도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입니다. 아버지와 같은 그의 손길로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비와 가뭄, 봄 여름 가을 겨울, 풍년과 흉년, 먹을 것과 마실 것, 부와 가난, 건강과 질병, 심지어 삶과 죽음까지도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저와 여러분을 비롯하여 이 세상 모든 만물을 전지전능한 능력의 손으로 보존하고 다스린다는 사실을 여러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때로는 우리가 이 하나님의 섭리를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특히 우리가 시험 들었을 때나 우리가 죄악 가운데 있을 때는 이 하나님의 섭리를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이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보존하고 다스린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지요.
때로는 나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볼 때에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니 어떻게 저 사람이 저렇게 행동할 수가 있어? 저러고도 저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어?
이렇게 우리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죄를 범하거나 어떤 사람이 죄를 범할 때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그 사람에게 미치는 것이겠습니까? 네 맞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가장 현명하시고, 가장 의롭고, 가장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때때로 자기의 자녀를 얼마 동안 여러 가지 시험과 그들의 마음의 부패성에 잠기도록 내버려 두신다.”(제 5장 5항)
하나님이 가장 지혜롭고 거룩하고 능력 있게 모든 피조물과 피조물의 모든 행동을 보존하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떤 어려움과 고통도 잘 견뎌내고 참으며 늘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 갈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고 마음의 부패성에 잠겨서 죄를 짓고 살아갈 때가 문제입니다.
우리는 마음이 전적으로 부패하였기 때문에 비록 우리가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 타고난 죄의 본성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죄를 짓습니다. 예수를 믿었다고 해서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다 죄를 짓습니다. 분노합니다. 성질을 부립니다. 죄를 짓습니다. 미워합니다. 부모를 미워하고, 자녀를 미워하고, 남편을 미워하고, 아내를 미워합니다.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마음이 상해서 다투기도 하고, 어떤 이웃은 절교하여 상종조차 하지 않습니다. 성도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교회 분쟁 중심에 서 있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런 행동들이 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은 매우 무겁습니다.
여러분, 죄를 지으면 어떻습니까? 그 사람을 피하게 됩니다. 아내에게 죄를 지으면 아내를 피하고 싶고, 남편에게 죄를 지으면 남편을 피하고 싶어지고, 부모에게 죄를 지으면 부모를 피하게 됩니다. 목회자에게 죄를 지으면 그 목회자를 피하게 됩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죄를 지으니까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을 피하여 숨습니다. 죄를 지으면 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지으면 하나님을 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존감이 낮아지고, 생활에 활력을 잃어버립니다.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그러다보니 하는 일도 안됩니다. 내가 하나님께 죄를 지으니 이제는 하나님이 나를 떠난 것 같습니다. 그동안 나를 도와주시고 나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이제는 더 이상 나를 도와주시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가장 현명하시고 의로우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때때로 자기 자녀를 얼마 동안 여러 가지 시험과 그들의 마음의 부패성에 잠기도록 내버려 두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를 보십시오. 베드로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제자들 중의 제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500여 형제중의 120명, 120명 중에서도 70명의 제자, 그 70명의 제자중 에서도 제자중의 제자인 12제자, 그 12제자 중에서도 가장 예수님과 가까이 동행했던 예수님의 3제자 중 한명, 그 세 명의 제자 중에서도 가장 예수님께 충성스러웠던 예수님의 수제자가 바로 베드로입니다.
죽어도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말했던 그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그것도 로마군병의 칼 앞에 굴복한 것도 아닙니다. 로마 군병이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지 않으면 지금 당장 칼로 죽이겠다고 한 것도 아닙니다. 대제사장 집의 아무런 힘도 없는 여종 앞에서 부끄럽게도 자신이 그렇게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했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그것도 한번 아니고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심지어 예수님을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면서 부인합니다. 세상에 이런 배신도 없고, 이렇게 비참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온 세상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은 왜 이렇게 베드로를 비참한 상태에 이르기까지 내버려 두셨겠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으시도록 충분히 모든 환경을 조성하여서 죄악 가운데 방치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잘 보존하고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나를, 혹은 나의 가정을 왜 그렇게 비참한 죄악 가운데 그대로 방치해 두시겠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여러 가지 시험과 죄악 가운데 내버려두심으로써 우리가 이전에 범한 죄를 징벌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범한 죄에 대하여 반드시 징벌하십니다. 죄를 지었는데 벌을 받지 않고 지나간 것을 다행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우리는 사람을 얼마든지 속일 수 있습니다. 부모도 속일 수 있고, 남편도 속일 수 있고, 아내도 속일 수 있고, 목사도 속일 수 있고, 교회도 속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범한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벌 받지 않고 승승장구해 오신 분도 계실 거에요. 분명히 있습니다.
부부가 사랑하지 않고 실컷 싸움하고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요? 형제 간에 미워하고 으르렁 거리면서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요? 목회자를 험담하고 미워하고 저주하면서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하지 않고 설렁설렁 일하면서도 월급 받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이 잘 살아오셨지요? 사람은 다 잊어 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죄를 다 기억합니다. 그리고 의로우신 하나님은 그것에 대하여 반드시 벌하셔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그러한 시험가운데, 죄 가운데 내버려두심으로써 우리가 이전에 범한 죄에 대하여 징벌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러한 시험과 죄악 가운데 빠졌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내가 왜 이런 시험 가운데 있는지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내가 왜 이런 죄악가운데 빠졌는지 자기 자신의 지난 잘못을 되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철저한 회개로 하나님께로 돌아온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시편 51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자신의 죄악에 대하여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은 후에 다윗이 기록한 참회시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 51:1-3,10,11)
다윗은 자신의 지난 죄악에 대하여 철저하게 회개합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나서 베드로는 닭울음소리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합니다.
여러분, 시험 가운데 빠져 있습니까? 아니면 죄를 짓고 심한 자책감에 빠져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징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한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이것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임을 기억하시고, 지난 잘못을 되돌아보고 속히 하나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여러 가지 시험과 죄악 가운데 내버려 두시는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부패의 숨은 힘을 깨달음으로써 우리를 겸손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굉장히 믿음이 좋아 보이고, 굉장히 깨끗하고 멋진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전적으로 부패하고,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입니다.
히스기야 왕을 보십시오.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 왕에게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너는 집을 정리해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할 것이다.”
분명히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면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 왕에게 그렇게 말했으면 자포자기 할만도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히스기야는 자포자기하지 않고 벽을 향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하나님이 그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에 십 오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이 성을 보호하리라”
그러면서 그 징표로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시는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여러분, 히스기야의 믿음의 기도가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께 겸비하여 기도했던 히스기야의 마음이 어떻게 변했는지 아십니까?
바벨론 왕이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렸다가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편지와 예물을 보냅니다. 그러자 히스기야가 굉장히 우쭐해졌습니다. 교만해 진 것입니다.
히스기야왕은 바벨론 사신들에게 남유다의 부강함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보물창고의 금은과 향품, 보배로운 기름과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남유다가 이렇게 부강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여러분, 남유다가 부강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보물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군사가 많아서도 아니고, 무기가 많아서도 아닙니다. 무엇 때문에 남 유다가 부강해졌습니까? 하나님이 지키셨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가 바벨론의 신하에게 보여줄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남유다는 하나님이 지키시기 때문에 어떠한 나라도 우리나라를 막을 수 없다. 내 죽을 병도 하나님이 고쳐주셨다.’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은덕을 잊어버리고, 마치 남유다의 부강함이 보물과 군사와 무기가 많음에 있는 것으로 자기 자랑을 하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위대한 왕이라 할지라도 사람은 부패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고 죄악가운데 우리를 내버려 둠으로써 우리의 마음의 부패를 깨닫고 겸손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여러 가지 시험 가운데 있고, 죄악 가운데 있다면, 혹은 하나님께 징벌 받고 있다고 여겨질 때 내 안에 있는 부패의 힘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부패한 존재이고, 얼마나 죄에 대하여 연약한 존재인지 깨닫고 하나님 앞에 허리를 숙이고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서 더욱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여러 시험가운데 있다고, 죄악가운데 있다고 사망가운데 졸고 있으면 안됩니다. 더욱 더 깨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긍휼과 자비를 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여러 시험과 죄악 가운데 내버려 두시는 이유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러 가지 시험과 죄악 가운데 내버려 두시는 이유는 모든 범죄의 기회에 대항하고 여러 가지 다른 의와 거룩한 목적에 힘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굉장히 역설적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러 가지 시험과 죄악 가운데 내버려 두시는 이유가 우리를 힘들게 하고 우리를 멸망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모든 범죄의 기회에 대항하여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위해 더욱 힘쓰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바울이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을 박해하는데 앞장서는 그 일을 막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울이 예수를 박해하는 죄를 짓는 그 가운데 그대로 내버려두셨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가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을 박해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주여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니라
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는 자신이 예수를 박해하는 데 가장 앞장섰던 죄인중의 괴수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 어느 누가 자신을 가리켜서 죄인중의 괴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범한 죄를 생각할 때 정말 그는 예수를 박해하는 죄인중의 괴수였고, 나 같은 죄인 중의 괴수를 구원하시려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임하였음을 철저하게 깨달았고, 그래서 더욱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깊이 깨닫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은 우리에게 여전히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부패성에 잠겨 있는 순간에도, 우리가 죄를 지어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섭리는 아주 섬세하게 하나님의 손길로 우리에게 미치고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에 걸려 넘어지고, 쓰러진다고 하더라도 여러분 이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과거에 많은 실수와 잘못을 범해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자녀들을 향한 섭리의 손길을 거둔 적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비록 하나님이 우리를 징벌하는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의 공의로 심판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손길로 우리를 보존하고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에게 공의로 우리를 징벌하기는 하시지만 단 한번도 우리를 포기한 적이 없으시고, 우리 마음의 부패성을 깨달아 더욱 겸손하게 하시며, 더욱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하시고, 모든 범죄의 기회에 대항하게 하여서 더욱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이루게 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신앙인의 삶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 가운데 있고, 마음의 부패성에 잠기도록 내버려두시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에게 어떻게 미치는지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시험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고통을 당하고 괴로운 순간에도, 때로는 우리가 죄를 범하여 괴로울 때에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꼭 기억하시고, 절대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포기하지 마시고, 속히 하나님께로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고 마음의 부패성에 잠겨 죄를 범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단 한번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거둔적이 없으시고, 지금도 우리를 다스리시는 그 손길을 깨닫고 속히 하나님께로 회개하여 돌아오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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