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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신앙인의 삶
강동협 2021-04-10 추천 0 댓글 0 조회 901
[성경본문] 창세기1:1-31 개역개정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6.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14.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18.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9.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20.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21.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2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신앙인의 삶

 

2021411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 설교

1:1-31*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일은 부활주일을 맞이하여서 부활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부활절 후 첫 번째 주일을 맞아서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신앙인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죽은 자가 부활하는 영역은 신의 영역입니다. 인간의 영역이 아닙니다. 더욱이나 우리의 부활은 썩지 않는 부활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고, 베드로도 죽은 다비다를 살렸고, 바울도 죽은 유두고를 살렸는데, 이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 죽은 다비다가 다시 살아난 것, 죽은 유두고가 다시 살아난 것은 예수님의 부활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시 살아난 나사로, 다비다, 유두고는 다시 죽었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다시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은 썩지 않는 부활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서 부활하셨고, 나중 열매인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인데 믿음으로 우리가 맞이할 부활은 예수님처럼 썩지 않는 부활입니다.

 

그래서 이 부활은 사람의 영역이 아닙니다. 신의 영역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썩지 아니하는 부활을 믿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믿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어요. 해와 달과 별을 비롯한 산과 바다와 나무, 새와 물고기, 동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온 만물을 창조하셨고, 사람을 지으셨고, 완전한 무에서,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부터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매 예배시간마다 고백하는 사도신경을 보면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를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에서 맨 처음 하는 고백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장 먼저 고백해야 할 것이 바로 하나님은 온 세상의 창조주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 맨 앞장을 읽어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이것으로 기독교는 시작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창조가 뭐냐?

창조는 하나님이 능력의 말씀으로 엿새 동안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만드셨는데 이 모든 것이 매우 좋았다(선하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을 만드신 다음에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고, 그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주셔서 불멸의 영혼을 주셨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지식과 의로움과 거룩함을 부여해 주셨으며, 그것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이 가장 먼저 하나님에 대하여 대답할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신 내 아버지입니다. 이것을 뺀다면 내가 섬기는 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지를 지으신 그 분이 없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틴 루터가 대교리문답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시편 기자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100:3절에서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온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인 것을 믿습니까?(아멘)

 

그런데 루터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조항을 제대로 믿고 있는 사람이 극히 극소수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모두 이 믿음을 나가서 전하거나 듣거나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믿음의 조항이 우리 자신을 향하여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 도무지 돌아보지도 않고, 고민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당연히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다 그렇게 고백하고, 다 그렇게 말하고, 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루터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루터시대에도 사람들은 다 그렇게 말하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루터의 말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우리를 지으셨다는 사실을 제대로 믿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무슨 말입니까? 지난 시간에 부활을 믿는다하면서 입으로는 시인하지만 행위로는 부활을 부인하는 것처럼 창조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창조를 말하지만 행위로는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는 사람이 많다. 행위로 하나님의 창조를 인정하는 사람이 극소수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행위로 하나님의 창조를 인정하는 소수의 사람입니까? 아니면 입으로는 시인하지만 행위로는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는 대다수의 사람 중에 속해 있습니까?

 

, 그렇다면 행위로 하나님의 창조를 인정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신앙인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첫째,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신앙인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합니다. 주권이란 무엇입니까?

주인 ()” 권리, 권세 ()” 그러니까 주인 되는 권리, 주인 되는 권세가 바로 주권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말은 모든 만물의 주인이 바로 하나님이며, 모든 만물은 하나님이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다스리고 통치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역대상 29:11,12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主宰)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다. 주권도 주께 속하였고, 부와 귀도 주께로 말미암고,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다는 겁니다.

 

골로새서 1:16절 말씀을 보면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이 온 우주를 붙잡고 계시고, 다스리는 분이 누구인가?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다스리는 분이 누구인가? 왕권들과 주권들과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만물이 누구 때문에 존재하는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 내 삶의 주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창조주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 바로 이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사람이고, 행위로서 하나님의 창조를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삶의 주권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라고 입술로는 그런 고백을 하지만 실제 행위로는 내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누구의 허락을 맡아야 하겠습니까?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허락을 맡아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허락을 맡지 않고 자신의 소견대로 합니다.

이것이 한 사람만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의 소견대로 행하는 것이지요. 이것을 사사기에서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고 하는데, 이스라엘에 왕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시만 각각 자기의 소견대로 행함으로써 그들의 행위로 여호와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루터가 창조주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있는 사람은 극히 극소수이다.라는 말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내 삶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나는 나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고 있지는 않는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사람은 자신에게 있는 권력과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권력이 누구를 위하여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대통령을 위하여 기도하거나 정치 지도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정치인이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있는 권력과 힘이 누구에게서 나왔는가? 일반 사회적으로 말하면 정치인들이 갖고 있는 권력과 힘은 국민에게서 나왔다고 하지만 이것을 더 근본적으로 말하면 그들의 권력과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진실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권력과 힘을 부당하게 사용하지 않습니다.

 

부귀...

부와 귀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물이 많은 것을 말하는 것이고, ()신분이 높은 것, 신분이 존귀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행위로 하나님의 창조를 인정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자신에게 있는 재물이 누구에게로부터 왔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그 재물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누구로부터 부와 귀가 왔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지요.

부와 귀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거두어 가는 것도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부와 귀로 하나님을 존귀하게 하는데 사용하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를 행위로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신앙인은 모든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서 백미는 사람 창조입니다. 모든 피조물을 다 창조하시고,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최적의 환경을 만드신 다음에 사람을 창조하였는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식과 의로움과 거룩함을 가진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그 만큼 하나님은 사람을 존귀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음으로써 사람이 단순히 흙으로만 지어진 것이 아니라 불멸의 영혼과 육신이 결합된 존재로 사람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사람은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현재 사람의 겉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악이 가리고 있는 사람의 존귀함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한 번 봐보세요. 아름답습니까? 보기 좋습니까? 예뻐 보입니까? 아름답게 보이는 얼굴도 있고, 예뻐 보이는 얼굴도 있고, 미워 보이는 얼굴도 있고, 꼴도 보기 싫은 얼굴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우리가 겉으로 보는 모습입니다. 죄로 얼룩져 있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답고 멋진 모습이 다 가려져 있는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로 찌든 모습의 사람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상사는 재미가 없는 겁니다. 불평불만이 안 나올 수 없습니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실망인 것이지요. 정치인을 봐도 실망, 경제인을 봐도 실망, 목사님을 봐도 실망, 부모님을 봐도 실망, 남편을 봐도 실망, 아내를 봐도 실망, 자녀를 봐도 실망.. 온 통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사람들을 볼 때마다 실망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습 그대로 바라보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의 이름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예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그 모습이 본래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을 때 그 아름다움과 멋짐을 가진 모습,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를 그렇게 봐주시는 분, 그 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죄가 우리의 모든 아름다움을 가린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본 모습을 회복하기 위하여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신 것이지요. 그러면서 우리에게 새로운 피조물이다. 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악만을 보지 않으시고 죄악으로 가려져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서 인간의 아름다움을 회복시켜 주신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신앙인은 사람을 볼 때 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겉모습으로 드러난 모습으로 판단하지 말고 그 사람의 존귀한 모습을 볼수 있어야 합니다. 노숙인을 볼 때에도 겉모습이 아니라 그분들의 존귀함을 봐야 하고, 장애를 가진 사람을 바라 볼 때에도 그들의 겉모습이 아니라 장애 너머 있는 그분들의 존귀함을 보아야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사람의 겉모양이 아니라 인간의 죄악으로 가려진 아름다움을 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남편을 바라볼 때에도, 아내를 바라볼 때에도, 자녀를 바라볼 때에도 인간의 죄로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걸작품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죄악으로 가려진 모습을 걷어내고 그 아름다움을 회복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아름다움을 회복시켜 주겠습니까? 닦아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그 죄악을 걷어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닦아 주면 됩니다. 무엇으로 닦아내야 합니까? 사랑으로 닦아내야 합니다.

사람을 가장 광채 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을 반짝 반짝 빛나게 하는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살살 문질러보세요. 자녀를 사랑으로, 남편을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으로, 부모님을 사랑으로 빛이 나게 하십시오.

 

그리고 사랑의 최고의 방법은 칭찬입니다.

잠언 27:21절 말씀을 보면,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도가니에서 은을 단련하여 불순물을 제거한 순은이 나오고, 풀무에서 금을 단련하여 불순물을 제거한 순금이 나오게 하듯이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여 불순물을 제거한 참사람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칭찬이야말로 사람을 그렇게 만듭니다.

 

칭찬에 인색하신 분들은 좀 쓰세요. 칭찬이 사랑입니다. 자녀를 칭찬하지 않는 사람은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남편을 칭찬하지 않는 사람은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고, 아내를 칭찬하지 않는 사람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부모님을 칭찬하지 않는 사람은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칭찬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형제간에 서로 칭찬하고, 부부간에 칭찬하고, 부모와 자녀 간에 칭찬을 회복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칭찬을 할 때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형상이 회복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신앙인의 삶에 대하여 말씀을 간단하게 나누었습니다. 신앙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행위로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말뿐인 신앙은 공허하고 아무런 힘이 없지만 행위로 증명하는 신앙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신앙에도 공허한 신앙이 있는가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는 권세 있는 신앙이 있습니다. 입술로는 인정하지만 행위로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권세 있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전능하신 천지 창조를 믿습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이 세상을 바라볼 때마다 그 창조의 아름다움과 멋짐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창조를 행위로 믿는 신앙인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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