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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십시오
강동협 2021-10-17 추천 0 댓글 0 조회 988
[성경본문] 로마서14:7-8 개역개정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언제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삽시다.

 

20211010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 설교

 

본문: 14:7-8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언제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삽시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특별히 영원한 생명, 영생과 관련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5:24절 말씀을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16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지요.

 

동시에 우리 기독교는 죽음과 매우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악을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기독교는 영생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종교이며, 동시에 죽음과도 뗄레야 뗄수 없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영생의 종교이며 동시에 죽음의 종교입니다. 죽음과 매우 친숙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죽음과 영생은 하나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 없이는 우리에게 생명도 없습니다. 죽음은 매우 우리에게 친숙한 단어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잘 이해하고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생긴 이래로 세상 역사를 보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기독교인들입니다. 그들은 죽음과 이 세상을 별개로 보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고 얻은 영생을 죽음이후에도 계속 누리며 살아간다고 믿었습니다.

 

지지난 주에 전에 함께 사역했던 목사님께서 갑자기 쓰러지셔서 쓰러진지 몇 일만에 돌아가셨습니다.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하시고, 귀국하여서 부목사로 15년을 한 후에 담임목회 5년차에 돌아가셨습니다. 담임목회 5, 짧은 목회를 참 굵게 하시고 세상을 떠나시고,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과 눈물이 있었습니다. 참 좋으신 분이었는데 그 분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죽음도 언제 그렇게 다가올는지 모른다.”

언제 죽더라도 후회함이 없는 인생을 살자

이것이 오늘 설교 제목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 그리 길지 않습니다. 우리 꿈나무들이 보기에는 내가 언제 20살이 되어서 대학에 들어가고, 내가 언제 30살이 되어서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고, 직장 다니면서 돈도 벌어볼까 생각할는지 몰라도 그 날이 속히 옵니다.

 

미현이가 엊그제 고3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학 2학년 2학기입니다. 내년되면 대학 3학년이고 조금 후면 대학 졸업하고, 취직합니다. 그리고 결혼합니다. 결혼하면 아이 낳고, 20년 금방 지납니다. 그러면 나이 50이 됩니다.

 

몇 일전에 우리 집 큰 아이가 텔레비전을 보는데 2002년 월드컵 16강전, 대한민국과 이탈리아의 경기를 보고 있었습니다. 정말 엊그제 같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리던 그 해에 큰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때 낳은 아이가 지금 20살이 되어서 그 때의 경기를 보고 있습니다. 이제 곧 세월은 흘러서 제가 70이 되고 은퇴할 날이 금방 옵니다.

 

여러분, 인생 순식간입니다. 우리 자녀들, 우리 곁에 있는 날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빠르면 대학에 갈 때 집을 떠날 아이들도 있고, 결혼하고 집을 떠나기도 하고, 취직한다고 집을 떠나기도 합니다. 순식간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우리가 함께 할 시간이 천 년 만 년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금방 지나갑니다. 세상을 떠날 때도 작별인사 할 시간도 없이 떠나기도 합니다. 앞에 말씀했던 그 목사님도 아침 일찍 집을 나선 것이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쓰러진 후에 수술하고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코로나라고 가족들이 얼굴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아침에 작별인사도 없이 다녀올게하고 나선 것이 마지막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주위 일어나는 일을 통해 배우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남의 일이 아니라 내가 언제든지 당하게 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일을 통해서도 배우고 슬픈 일을 통해서도 배워야 합니다.

 

,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그러할진대 우리가 언제 죽어도 후회함이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첫째, 우리의 삶이 주님을 위한 삶이 되어야 하고, 우리의 죽음이 주님을 위한 죽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후회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영혼과 우리 인생의 주인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보면 예수님도 자신의 삶과 죽음을 후회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사야 53:11절 말씀을 보면,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삶과 죽음을 후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만족하게 여기셨습니다.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와 죽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살아도 자신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자신을 위하여 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살아도 그의 백성 곧 우리를 위해 살았고, 죽어도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가르치셨고, 우리를 위하여 병을 고치셨고, 우리를 위하여 본을 보이셨고, 우리를 위하여 고난도 받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말 그대로 한 알의 밀이 되어서 땅에 떨어져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삶은 후회함이 없었고, 예수님의 죽음도 후회함이 없는 죽음이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기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과 죽음은 누구를 위한 삶이고, 누구를 위한 죽음입니까? 분명한 것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사람은 살아도 후회하고, 죽어도 후회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사는 사람은 잘 살아도 후회하고 못 살아도 후회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사는 사람은 편안히 죽어도 후회하고, 고통스럽게 죽어도 후회합니다.

 

또한 사람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살아도 후회하고, 죽어도 후회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위하여 살면 사람이 배신을 해요. 자식을 위해 열심히 희생하고 살았는데 자식이 배신을 합니다. 먹을 것 먹지 않고, 입을 것 입지 않으면서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수고 했는데 자식이 배신을 하고, 남편만 바라보고 남편을 위해 열심히 살았는데 남편이 바람을 피고, 아내와 가정을 위해 열심히 직장생활하면서 살았는데 아내가 배신을 하고, 성도를 위해 열심히 목회를 했는데 성도가 배신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 지 몰라요. 목사님을 믿고 열심히 신앙 생활했는데 목사님이 배신을 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니까 사람을 위해 사는 사람도 후회하더라. 자기 자신이든, 자기가 낳은 자식이든, 목회자든, 성도든, 형제든 사람을 위해 사는 인생은 후회하더라

 

, 그러면 우리가 후회하지 않는 인생은 누구를 위해 사는 인생인가?

 

오늘 본문 말씀 롬 14: 7,8절 말씀입니다.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사랑하는 여러분, 후회하지 않는 인생은 어떤 인생인가? 바로 주를 위하여 사는 인생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 죽음은 어떤 죽음인가? 바로 주를 위하여 죽는 죽음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 여러분, 그 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자식을 위해서 눈물 많이 흘리고, 마음 졸이고, 얼마나 고생 많으셨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제는 더 이상 자식을 위해 살지 않으셔도 됩니다. 더 이상 자식을 위해 살지 않으셔도 충분합니다. 지금까지 자식을 위해 사신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제는 주님을 위해 삽시다. 이제는 주님을 위해 살고, 이제는 주님을 위해 죽읍시다.

 

우리 젊은 부모님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을 위해 살지 말고 주님을 위해 사시기 바랍니다. 자식을 위해 자식을 돌보는 것보다 주님을 위해 자식을 돌보는 사람이 더 훌륭한 부모님이 되고, 자녀로부터 더 존경받게 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도 사람 위해 하지 마십시오. 신앙생활은 주님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이야말로 우리를 위하여 사시고, 주님이야 말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주님이야 말로 우리의 진정한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언제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는 자신의 뜻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었습니다. 나의 뜻대로 하지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라는 것이 예수님의 삶이었어요.

사도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2: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의 삶은 과거에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현재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정말 기독교는 죽음을 통해 부활을 얻는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라는 말씀처럼 죽어야만 생명을 얻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잘 죽어야 합니다.

 

아내가 죽어야 남편이 삽니다. 남편이 죽어야 아내가 살고, 부모가 죽어야 자식이 사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가 살면 남편이 죽고, 내가 살면 아내가 죽고, 내가 살면 자식이 죽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죽어야 예수님이 산다는 것입니다. 내가 살면 예수님이 죽습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야 가정도 살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야 교회도 사는 것입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야 남편도 살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야 아내도 살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야 자식들도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안에서 예수님이 살아있게 하십시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야 합니다.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나의 욕심도 죽이고, 나의 자아도 죽이고, 나의 분노도 죽이고, 나의 성질도 죽여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삽니다. 예수님이 살아야 내 가정도 살고, 예수님이 살아야 우리 더사랑교회도 살고, 예수님이 살아야 대한민국이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심으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그러면 지금부터 잘 죽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나의 성질 죽이는 연습을 하세요. 나의 분노 죽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연습입니다. 연습은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포기하면 안됩니다. 될 때까지 계속 연습해야 합니다. 한꺼번에 확 변하지 않아도 됩니다. 갑자기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려면 여러분이 너무 힘들어요. 어떻게 사람이 갑자기 확 변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모를 정도로 조금씩 변하면 됩니다. 연습이라는 것은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는 것입니다. 운동선수가 연습을 통해서 갑자기 실력이 늘어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실력이 나아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연습량이 늘어나고 숙련이 되기 시작하면 조금씩 나아지는 실력이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습관을 어떻게 쉽게 바꾸겠습니까? 절대로 쉽게 바꿀 수가 없습니다. 바꾸고 싶지만 바뀌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당장 확 달라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연습하면 조금씩, 아무도 모를 정도로 조금씩 바뀝니다. 지금부터라도 여러분 안에 예수님이 살아 역사하시도록 여러분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으십시오.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살아계셔서 여러분의 삶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스스로 여러분이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후회함이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사랑하며 사십시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미워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미움 받는 사람보다 미워하는 사람이 더 불쌍합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을 보십시오. 그 사람의 마음은 지옥에 사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분노가 가득해요. 요한은 요한일서 3:10,1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압니다. 그러나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서 형제에게 미움받는 사람보다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이 더 불쌍한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아직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용서하고,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아직 용서하지 못한 자녀가 있다면 그 자녀를 용서하고 사랑하십시오. 아직 배우자를 용서하지 못했다면 용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아니 사랑하기가 어렵다면 적어도 용서는 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옥의 삶에서 벗어납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은 지옥에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지는 못해도 용서는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사랑까지 해야 후회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용서를 넘어 사랑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못하면 무언가 아쉽고, 무언가 허전해요. 그런데 사랑하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꽉찬 행복을 느낍니다.

 

우리 인생 짧습니다. 사랑하면서 살아도 순식간에 지나갈 세월입니다. 그 짧은 세월 미워하면서 사는 것은 너무 억울해요. 비록 짧은 세월을 살아가지만 사랑하면서 살면 만족합니다. 후회함이 없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언제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첫째, 우리의 삶이 주님을 위한 삶이 되어야 하고, 우리의 죽음이 주님을 위한 죽음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내가 지금 잘 죽어야 합니다. 날마다 죽는 연습을 합시다.

셋째, 사랑하며 삽시다. 미워하며 사는 인생은 지옥의 인생이며, 반드시 후회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며 살면 만족합니다. 후회함이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주님을 위하여 죽고, 날마다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으면서 죽는 연습을 하고, 사랑하면서 정말 언제 죽어도 후회함이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언제 죽어도 후회함이 없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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