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사도행전20:22-25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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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5.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당신의 삶이 사명이 되게 하십시오
2021년 6월 13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 예배
행 20:22-25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절 후 세 번째 주일이며, 순교자기념주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순교자기념주일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단순히 주기철 목사님이나 손양원 목사님 같은 순교자들의 순교신앙을 기념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러한 순교자의 신앙을 본받아 살겠다는 다짐의 예배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온 과정을 살펴보면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교회에 다니기 시작해서 오늘까지 온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예수 믿으면 복받는다는 말을 듣고 교회에 나온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질병에서 고침을 받고 처음 신앙생활을 한 사람도 있고요, 어떤 사람은 우리 딸과 결혼하려면 교회에 다녀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교회에 나온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친구 따라 강남가는 것처럼 친구 따라 교회에 나온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마음에 평안을 얻기 위하여 교회에 나온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처음에 교회에 나오게 된 배경은 각자가 다 다릅니다. 그러나 예배를 드리거나 성경을 공부하면서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점점 교정되어 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제대로 된 신앙생활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설교를 듣고 성경을 공부하면서 신앙생활이 이런 것이었구나. 아, 예수를 믿고 살아간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어떤 사람은 설교나 성경공부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자신의 삶이 맞춰지는 분들이 있는 반면 어떤 분은 안 맞춰집니다. 그냥 똑 같아요. 신앙생활을 오래하기는 하지만 그 삶이 변하지 않습니다. 그냥 종교생활을 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분들이 계십지요.
우리 더사랑교회 성도님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진정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우리 영혼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되고 진정으로 행복해 질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삶을 살게 되면 우리 영혼이 피폐해져가고 우리가 절대로 행복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우리의 삶이 변화를 받아야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자, 그러면 오늘 순교자기념주일을 맞아서 순교자들의 신앙을 칭송만 하는 예배가 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순교자기념주일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순교자들의 신앙을 칭송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러한 순교자의 신앙을 본받아서 우리의 삶이 순교자의 삶이 되도록 결단하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순교자의 신앙을 칭찬하고 감탄만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순교자의 신앙을 본받아서 살겠다는 마음이 있습니까? 아니면 순교자의 신앙을 칭송하기는 하지만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여기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삶이 순교자의 삶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당신의 삶이 사명이 되게 하십시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보내어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청하여 밀레도로 오게 합니다.
그리고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 나는 이제 성령에게 이끌리어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하니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내가 여러분에게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지만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 말씀대로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갔고, 거기에서 유대인들에게 의해서 죽을 고비를 여러번 맞이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는데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동맹한 사람이 사십여명나 되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을 죽이기로 작정한 사람이 40명이 넘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살 수 있겠습니까? 나를 죽이겠다고 작정하고 달려드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괴롭습니다. 한 사람만 나를 죽이겠다고 달려들어도 힘든데,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한 사람이 40명이 넘으니까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것을 알고 로마 군대의 천부장이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그를 보호하려고 바울을 가이사랴에 있는 유대 총독에게 보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또 바울을 고발합니다. 결국 바울은 로마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기로 하고 로마로 향합니다. 바울은 로마로 가는 도중에도 풍랑을 만나 배가 파선되어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고, 멜리데 섬에서 독사에게 물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맞이하지요. 그리고 로마에 가서 2년 동안 가택연금의 상황에서 편지를 쓴 것이 옥중서신이라고 하는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입니다.
그 이후에 바울은 다시 로마감옥에 투옥이 되고 거기에서 디모데 후서를 씁니다. 그리고 바울은 네로 황제 재위시 AD 67년 말경에 제 2차 로마감옥에서 순교를 당합니다.
바울이 당한 순교 방법은 참수형이었습니다. 로마제국에서의 사형은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혈통적으로는 유대인이었으나 로마시민권자였기 때문에 로마시민권자가 사형언도시 받는 참수형을 받았습니다.
바울의 순교장면은 그의 제자들의 글에 의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황제의 칙령이 떨어진 뒤 사도바울은 끌려 나가 빨리 처형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황제 폐하! 저를 처형한다면 저는 다시 살아서 폐하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이 세상을 심판하러 다시 오실 예수그리스도 즉 우리의 왕 앞에서 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사도바울은 동쪽을 향해 몸을 돌리고 두 손을 높이 든 채 오랫동안 기도드렸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울의 몸은 형틀에 놓이고, 양손은 뒤로 묶이고, 머리는 움직이지 못하도록 목에 노끈으로 매어 당겨지고, 로마군인의 검도로 사도 바울의 목을 내리쳐 참수당하였다”
사도바울이 참수당한 곳은 로마시 서쪽 성문 밖 5KM지점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참수당할 때 목베임을 받은 사도바울의 머리가 3번 튀었는데, 3번 튄 장소마다 샘이 솟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회심한 이후로는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위하여 끝까지 충성하다가 순교를 하게 됩니다.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한 말씀,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는 말씀처럼 바울은 정말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2차 로마감옥에서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쓴 편지, 디모데후서 4:7절 말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는 말씀처럼 바울은 정말 그렇게 살았습니다.
사실 바울의 순교는 단회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목숨은 한번 죽는 것입니다. 바울도 한번 죽은 것이지요. 그런데 순교는 한번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말이냐면 순교는 1회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순교는 바울이 로마에서 참수형을 당할 때 한번 죽는 것으로 순교한 것이 아니라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회심을 한 이후부터 로마에서 참수형을 당할 때까지 계속 이어진 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기 위하여 달려간 모든 순간 순간이 바울에게는 순교의 현장이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3년 반 동안 에베소 성도들을 가르치고 복음을 증거하고, 그들을 위해 흘린 모든 눈물과 겸손,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들, 주님을 섬겼던 모든 순간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모든 순간들, 바울이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기까지 모든 바울의 삶 자체가 순교의 연장선상이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바울이 목베임을 당한 것은 바울의 모든 순교의 삶을 딱 마무리 하는 한 순간이었고, 바울의 전 생애가 순교의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교회는 제가 담임으로 부임하면서 5대 비전을 내걸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끄는 교회/ 다음세대가 존중받고 사랑받는 교회/ 순교자를 길러내는 교회/ 한국교회를 바로 세우는 교회/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교회/
어떻습니까? 우리교회가 5대 비전에 따라서 진행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까? 우리교회의 방향이 그러합니다. 우리교회는 어떻게해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이 이끄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성도들의 삶도 하나님의 말씀이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다음세대가 존중받고 사랑받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여러분의 자녀들도 가정에서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순교자를 길러내는 교회가 되어야 하며, 여러분도 삶의 자리에서 순교자의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또한 우리교회는 한국교회를 바로 세우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자, 그런데 순교자를 길러내는 교회라고 할 때, 아마도 여러분은 이 순교자를 길러낸다는 것을 일회성의 의로운 죽음으로서의 순교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순교자는 그렇게 길러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다못해 올림픽 금메달 선수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공부도 그렇지요? 어디 공부 잘하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일입니까? 어릴 적부터 정말 체계적인 학업스케줄과 수많은 시간을 들여서 공부를 한 결과로 ‘1등급’이 나오는 것이지요. 세상 공부도 그렇고, 세상 일도 그러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일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순교자는 면류관을 받는 일이지요?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운동선수가 갑자기 면류관을 받는 것이 아닌 것처럼 순교는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순교자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
오늘 설교제목입니다. 무엇입니까?
“당신의 삶이 사명이 되게 하십시오”
어떻게 우리의 삶이 순교자의 삶이 될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바울이 회심한 이후에 전생애를 순교의 삶으로 드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바울의 가슴에 살아있는 사명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늘 가슴에 새기고 있었습니다. 로마서 1:1-2절을 보면, “예수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바울의 가슴에는 자신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는 사명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전 생애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라고 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정말 사도바울은 단순하고 명확한 사람입니다. 그의 삶 자체가 사명이었습니다. 그의 삶과 사명은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입니다. 바울의 삶은 그 자체가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입니다. 바울의 삶 그 자체가 곧 사명인 것입니다.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조차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이 사명이 되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삶과 사명을 분리하여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의 삶 다르고, 나의 사명 다르고 가 아닙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바울의 삶은 곧 사명이었습니다. 우리의 삶 따로, 우리의 사명 따로가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곧 사명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의 삶의 자리가 사명의 자리가 되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가정이 사명의 자리가 되게 하고, 여러분의 직장이 사명의 자리가 되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은 바로 여러분의 사명을 이루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갖고 있는 직분이나 직책이 곧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주신 직분이자 직책입니다. 아빠로서 사명을 이루라고 아빠라는 이름이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곧 순교의 삶이 되기 위해서는 가정에서 아빠로서, 엄마로서의 삶 자체가 사명의 삶 곧 사명을 이루는 삶이 되어야 하는데,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려 여기지 않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직장에서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은 단순히 우리가 돈을 벌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사명을 이루는 곳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직장에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명이라는 단어를 잘 생각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냥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다니거나 사업을 하면서 돈을 벌고, 그냥 살아가는 것이지요. 어떤 절대자가 나에게 사명을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은 다릅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모든 사람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주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사명을 받았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사명을 받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부여 받았습니다.
오늘 순교자 기념주일을 맞아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을 어떻게 이루어 낼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고난이 온다면 그 고난도 받아내십시오. 견뎌내십시오. 참아내십시오.
고난과 슬픔가운데 눈물 흘리고 있다면 그 고난과 슬픔의 환경을 사명을 이루는 환경으로 바꾸십시오.
바울처럼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의 삶 자체가 곧 사명이 되는 삶을 살아낸다면 현재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과 고난을 넉넉하게 이겨낼 수가 있고, 그렇게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살아가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순교자의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사명이 되고,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 순간이 곧 순교자의 삶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땅에 주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를 당한 많은 믿음의 선진들을 생각합니다. 사도바울, 베드로, 도마를 비롯한 열 두 사도와 초대교회, 중세교회를 거치면서 오늘날까지 오직 믿음으로만 살다가 예수의 이름에 목숨을 걸었던 순교자들을 생각합니다. 특별히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선교하다가 순교하신 선교사님들과 일사각오 주기철 목사님,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을 생각합니다. 우리 더사랑교회 성도들이 이러한 순교자의 신앙을 본받아 살게 하시고, 모든 삶이 사명이 되게 하시고, 모든 삶의 순간 순간이 순교자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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