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삶
- 강동협 2025.3.17 조회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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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7 : 54 - 60 | 개역개정
-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삶
2025년 3월 16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설교
1. 치유와 회복을 위한 기도
2. 설교를 위한 기도
3. 설교
본문: 행 7:54-60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천국인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이달의 성경읽기로 우리는 사도행전을 읽고 있습니다.
저는 사도행전을 읽을 때마다 얼마나 은혜가 되고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특별히 성령행전이라고 하는 것처럼 성령충만함을 입은 사람들의 사도들의 이야기가 계속 되고 있어서 사도행전 읽기가 참 좋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스데반 집사의 이야기입니다.
사도들이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택하여 그들을 안수하여 집사로 세웁니다. 원래 집사는 사도들이 말씀사역과 기도하는 일에 집중하기 위하여 구제를 비롯한 교회의 여러 가지 일들을 맡기기 위하여 일곱 명의 집사를 세웠는데
사도행전에는 아주 특별하게 일곱 집사 중 한 명인 스데반 집사의 사역을 아주 큰 비중을 들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6장을 보니까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였고,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도 전합니다. 특별히 7장을 보면 스데반 집사의 변론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말하는 것을 보면 그 수준이 거의 사도급입니다.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가나안으로 향해 간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요셉이야기, 모세이야기, 출애굽 이야기, 광야생활과 가나안 점령이야기, 다윗과 솔로몬의 성전건축이야기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보내신 선지자 이야기를 하면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까지 말하는데 그 내용은 유대인들을 책망하는 이야기입니다.
스데반 집사의 변론 중 마지막 부분을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7:51-53절까지 말씀입니다.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이 말을 듣고 그들의 반응이 어떠했을까요? 이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이 이를 갑니다. 5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 충만함을 입은 사도들이 설교를 하였을 때 그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첫째는,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을 때의 반응입니다. 사도행전 2:36-41절까지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성령을 받고 첫 번째 설교를 하는데,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그 때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러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또 여러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마음에 찔려서...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그리고 회개하여 세례를 받습니다.
둘째는, 스데반 집사의 설교를 들었을 때의 반응입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54절 말씀을 보니까?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마음에 찔린 것은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사랑하는 여러분, 어떻게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서 성령의 능력으로 설교하는 데 한 무리는 마음에 찔려서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는데, 한 무리는 마음에 찔려 이를 갑니까?
베드로와 스데반을 보면 똑같이 성령충만하여서 복음을 전했는데, 베드로는 그 설교를 통해 3천명이나 회개하고, 스데반은 돌 맞아 죽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령충만하다고 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 다 잘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충만하여 설교한 결과 베드로는 3000명이나 신도의 수가 더했고, 스데반은 성령충만하여 설교한 결과 돌 맞아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것으로는 성령충만함의 결과를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의 결과는 무엇인가?
55절부터입니다. 이 장면을 보면 성령충만한 사람의 모습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지금 자신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이를 갈고 있습니다? 이를 간다는 게 무엇을 말합니까? 지금 자신을 죽일 작정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러한 모습을 본 성령충만한 스데반의 모습을 보겠습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충만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는 거에요.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는 겁니다. 하늘이 열린다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겁니다.
오늘 설교제목을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삶”이라고 정했습니다.
여러분, 성령충만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 다른 말로 하면 천국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삶, 바로 천국의 삶을 사는 것이지요.
여러분,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사는 것?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삶을 사는 것은 언제 가능한가? 성령 충만함을 입을 때 가능합니다. 성령 충만해야 되요. 여러분, 성령 받은 것과 성령 충만은 다릅니다.
여러분은 다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의 선물을 받았어요. 그러나 여러분 모두가 다 성령 충만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요즘 아침에 하루한절 모닝암송으로 데살로니가전서 5장도 암송하고 있는데, 데살로니가전서 5:16-22절까지 말씀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아멘!
19절에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시지만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갈라디아서 5:17절 말씀을 보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성령은 육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지만 육체의 소욕은 성령이 하고자하는 것을 못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소멸하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 육체의 일은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 5:19-21절까지 말씀을 보면,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이런 육체의 일들이 다 성령을 소멸하게 하는 겁니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 성령을 소멸하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성령을 받았지만 모두가 다 성령충만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요? 우리 모두 다 성령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로마서 14:17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은 우리가 먹고 마시며 교제나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비본질적인 것을 말하는 겁니다.
로마서 14장 1절 이하를 보면 여기에서 말하는 먹고 마시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게 됩니다. 당시 로마 교회 안에서는 먹는 것과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가 교회에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먹을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고, 먹지 않는 사람은 먹는 사람을 비판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안식일을 지키자 하였고, 어떤 사람은 주일을 지키자 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모두 지키자 하면서 서로 비판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서로 비판하고 서로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면서 로마서 14:17절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즉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비본질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 가지고 서로 비판하지 말라.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가?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것이다.
오직 성령 안에서 의를 누리고, 오직 성령 안에서 평강을 누리며, 오직 성령 안에서 희락을 누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누리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성령 안에서 누리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충만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충만할 때 누리는 겁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지 못합니다. 대부분 비본질적인 것을 가지고 서로 비판하고 업신여기고, 정죄합니다. 내가 옳다는 겁니다.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육신의 정욕입니다. 성령은 다 내탓이요 라고 하지 당신 탓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옳다고 하거나 당신 탓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육신의 소욕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곳은 그 곳이 교회이건, 가정이건, 사회이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여러분, 세상에 절대는 없어요. 절대는 오직 하나님께만 사용하는 겁니다. 내가 절대적으로 옳다. 그런 것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내가 절대적으로 옳은 것처럼 보여서 그렇게 다른 사람을 비판했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가 틀렸던 경우가 더 많아요.
베드로도 그랬고, 다른 사도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절대적으로 부정한 음식을 먹으면 안됐고,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됐습니까? 하나님이 세 번이나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면서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려 주셨지 않습니까?
바울도 보십시오.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들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바울에게는 하나님께 충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절대적인 선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예수를 전하다가 순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상에 하나님 외에, 하나님의 말씀 외에 절대 옳은 것은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변하고 상황이 바뀌면 내가 옳다고 주장했던 것이 부끄러울 때가 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성령 충만을 입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스데반을 보십시오. 성령 충만을 입으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봅니다. 성령 충만을 입으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성령 충만을 입으니까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보는 겁니다.
성령충만을 입으니까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는 순간에도 주님을 원망하지 않고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성령 충만을 입으니까 자신을 죽이는 이들을 저주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하신 가상 칠언 말씀과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으면서 말한 3언의 말씀이 있는데, 이 중에 두 개의 말씀이 겹치는데, 하나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 스데반이 한 말씀,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둘째는 아버지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입니다. 저는 이 두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가 혹시나 하면서 주의 하는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버지, 주 예수님 내 영혼을 받아주옵소서.
그런데 두 번째는 혹시라도 몰라서 조금 조심하는 겁니다. 나를 미워하고 박해하고, 나를 죽이는 사람을 향하여 아버지,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라고 하지 못할까봐 걱정됩니다.
아직 수련이 부족하여 그런 상황이 닥치면 그렇게 못할 것 같고, 같이 엉겨서 그들과 싸울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는 늘 마음을 곱게 써야 합니다. 마음에 분노를 일으키는 것이 있다면 최대한 나를 그런 가운데 방치하지 말고 빨리 돌아와야 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성령 충만한 삶을 살면 육신이 하고자 하는 삶을 못하게 막을 수가 있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면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우리 더사랑교회 성도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것은 사업이 성공하고, 건강하고,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나 교회 안에서 자신이 주장하는 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성령충만해서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 곧 하나님의 나라를 풍성하게 누리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직 주님 안에 있을 때, 오직 성령안에 있을 때 하나님의 나라를 풍성하게 누림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직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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