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요한복음10:14-15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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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
2025년 8월 3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 설교
1. 치유와 회복을 위한 기도
찬양: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시니까?
2. 설교를 위한 기도
3. 설교 본문: 요한복음 10:14-15절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천국 인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친밀하고 깊은 관계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 배우자, 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기쁨을 얻지만, 때로는 그 관계 안에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껴본 적은 없으십니까? 우리는 사랑하는 이에게 온 마음을 다해도, 때로는 상대방의 이해 부족이나 우리의 기대와 다른 모습에 실망하기도 합니다. 세상의 어떤 관계도 우리를 온전히 채워줄 수 없음을 느낄 때가 바로 그 순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끊어지지 않는 영원한 관계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우리 삶의 진정한 기반이자 영원한 만족이 될 수 있는 예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 대해 나누려 합니다.
목자와 양, 그리고 하나님과의 '하나 됨'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목자와 양의 관계, 즉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는 굉장히 독특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목자와 양의 관계를 무엇과 같다고 설명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14절과 1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살펴보면, 예수님이 나를 알고, 나도 예수님을 아는 것이 무엇과 같은가?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아시고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자, 여러분, 이 관계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와 예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친밀한 관계인가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하나이십니다. 요한복음 10장 30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이것을 신학적으로 ‘삼위일체’라고 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은 각각 위격은 다르지만, 본질이 같으신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과 나의 관계가 마치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관계와 같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동이 되었는지 몰라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본질이 같으신 하나님입니다. 서로를 너무 잘 아십니다. 생각이 똑같습니다.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서로를 너무 잘 압니다. 절대로 생각이 다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예수님의 생각이고, 예수님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을 잘 믿는데 예수님을 모른다? 말이 안 됩니다. 그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면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미워하면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가 그러하듯이, 예수님과 나의 관계,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가 그렇다는 겁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정말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예수님과 나는 하나’라는 사실은 우리가 감히 상상조차 할수 없는 놀라운 진리입니다. 물론 이 말은 내가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말이 아니라, 관계적인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나의 관계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하나'라는 겁니다.
여러분, 이 관계는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킬만큼 굉장히 중요하고 놀라운 진리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는 것이 예수님을 박해하는 것이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박해하는 것이 곧 나를 박해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욕하면 예수님을 욕하는 것이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욕하면 나를 욕하는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겁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곧 나의 부활이고, 나의 부활이 곧 예수님의 부활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이 진리가 얼마나 놀랍고 감격스럽습니까?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가능한 신비로운 연합입니다.
인격적인 '앎'의 깊이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과 이런 하나된 관계라면 예수님과 우리는 서로를 너무 너무 잘 알아야 합니다. 우선 목자와 양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목자는 양을 너무 잘 압니다. 그리고 양도 목자의 음성을 압니다. 양은 다른 목자의 음성을 듣지 않고, 오직 자기 목자의 음성만 듣습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보면, 예수님도 우리를 너무 잘 아시죠.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모든 필요와 갈망을 알고 계시고, 우리의 모든 아픔과 기쁨도 공감하십니다. 우리의 아주 깊은 곳까지 다 아시죠. 우리가 생각하고 행하는 그 무엇도 예수님 앞에는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 너무 잘 아는 반면 우리는 예수님을 너무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너무 죄송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선한 목자는 너무 양을 잘 알아서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데 양은 목자의 음성을 모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지 않고 삯꾼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라간다는 것이죠. 원래 양은 자신의 목자의 음성만 알고 타인의 음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을 따르지 않고 도리어 도망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듣지 못할까요? 그것은 우리가 아직 예수님을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아는 것은 단순히 머리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안다는 말은 예수님을 인격 대 인격으로 알아가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인격체로서 예수님과 일대일로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만남입니다.
예수님을 인류의 구원자로만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구원자로 아는 것이고, 우주의 주인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주인으로 알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경험하고 아는 예수님이 아니라 내가 직접 살아계신 예수님을 경험하고 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인격적으로 알아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이력을 외우거나 소문을 듣는 것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나누고,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경험하며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깊이 스며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를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과 함께 울고 웃고 부대끼며 경험을 통해 알아가듯이, 우리의 삶의 희로애락 속에서 예수님을 실제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 그분의 위로를, 부족함 가운데 그분의 채우심을, 외로울 때 그분의 동행하심을 경험하며 '아, 예수님은 정말 이런 분이시구나!' 하고 마음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셨습니까? 그리고 지금도 매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계십니까? 예수님과의 이러한 인격적인 만남은 과거 한 번의 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뿐만 아니라 오늘 현재도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있어야 하고, 미래에도 오늘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처럼 우리의 미래에도 항상 매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예수님을 잘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더 잘 알아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의식적인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매일 말씀을 읽을 때 단순히 정보를 얻는 것을 넘어, '이 말씀 속에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오늘 내 삶에 이 말씀이 어떻게 적용이 될까?' 질문하며 묵상해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우리의 모든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아뢰고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우리의 일상적인 결정 속에서, 그리고 관계속에서, 혹은 직장과 삶의 모든 터전에서 삶의 모든 순간 그분을 의식하며 동행을 구하는 것이 바로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사랑과 순종의 기쁨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예수님과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예수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이 됩니다. 예수님과 나의 생각이 다르지 않아요. 예수님이 미워하는 것을 우리가 미워하게 되고, 예수님이 좋아하는 것을 우리가 좋아하게 됩니다. 우리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은 당연히 예수님이 좋아하고 예수님도 사랑하게 됩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나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힘들지 않아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힘들거나 부담스럽지 않아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 안에 진정한 기쁨이 넘쳐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과 나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사랑은 자발적인 순종을 낳고 그 순종 안에서 우리는 참 자유와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서 순교할 수도 있어요. 예수님을 위해 순교하는 것이 고통이나 힘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순교하는 것이 나의 기쁨이요, 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과 나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목숨을 내어주는 부모의 마음처럼,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드리는 숭고한 사랑처럼, 예수님과의 '하나 됨'은 우리에게 그 어떤 두려움도 초월하는 놀라운 용기와 헌신을 선물합니다.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화: 전장에 뛰어든 간호사의 사랑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한 야전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수많은 부상병들을 돌보며 밤낮없이 헌신했습니다. 어느 날, 전장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은 병사들이 들이닥쳤고, 그중에는 그녀가 평소에 각별히 보살피던 젊은 병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고,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병사는 희귀 혈액형을 가진 병사였기 때문입니다.
의사가 말합니다. "이 병사를 살릴 방법은 단 하나뿐입니다. 당장 수혈을 해야 하는데, 이 희귀 혈액형을 가진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모두가 절망에 빠진 순간, 그 간호사가 용기를 내어 말했습니다. "제 혈액형이 그 병사와 같습니다! 제가 수혈하겠습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소매를 걷어붙였습니다.
사실 이 간호사는 평소에 주사 바늘조차 무서워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작은 주사만 맞아도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두려워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그 병사에게 느꼈던 깊은 애정과 살리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은 그녀의 모든 두려움을 삼켜버렸습니다. 그녀는 고통을 감수하며 수혈을 시작했고, 그녀의 헌신적인 사랑 덕분에 그 젊은 병사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평소 주사 바늘을 무서워하던 그녀가, 왜 자신의 피를 기꺼이 내어줄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의무감이나 강요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 병사를 향한 깊은 사랑과 애정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랑이 그녀의 두려움을 압도하고,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분을 향한 사랑이 깊어집니다. 그 사랑이 깊어지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 이상 부담스럽거나 어렵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간호사가 병사를 살리기 위해 주사 바늘의 고통을 감수했듯이, 우리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 때문에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이 기쁨이 되고, 그분을 위한 희생이 영광이 됩니다. 우리가 아직 순교를 무섭게 느끼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아직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인격적인 사랑이 더 깊어져야 함을 보여주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순교는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일상 속에서 나의 시간, 재능, 물질을 예수님을 위해 기꺼이 드리는 작은 희생과 순종도 모두 이 '하나 됨' 안에서 나오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며 그분을 사랑하게 될 때, 우리는 그분과 하나 되어 기꺼이 모든 것을 드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신비로운 연합, 그리스도와 교회
그래서 둘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놀라운 신비한 일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인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라는 사실은 더욱더 놀라운 일이죠. 이건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놀라운 믿음의 비밀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말하는 순간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신성모독을 했다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어요. 예수님이 아버지와 하나라는 이 사실은 유대인들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것처럼 예수님과 내가 하나가 된다는 사실은 정말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놀라운 신비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신비를 우리 삶에 가장 친숙한 관계인 부부관계로 설명했습니다. 에베소서 5장 31-32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한 육체가 되는 것입니다. 부부가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리스도와 교회가 남편과 아내, 부부처럼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신랑이요, 우리는 신부라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예수님과 나는 하나입니다. 이 진리가 놀랍지 않습니까?
그래서 부부란 어떤 관계인가? 부부는 서로를 위해 아낌없이 희생하고 사랑할 수 있는 관계입니다. 서로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관계가 바로 부부입니다. 부부의 하나 됨은 가정의 가장 근본적인 연합입니다. 이 연합된 사랑 안에서 자녀는 안정감을 얻고, 가정은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복입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잘 알면 예수님을 위해 죽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겁니다. 제가 처음에 우리교회에 부임하여 교회 5대 비전을 세울 때에 '순교자를 길러내는 교회' 이렇게 말하니까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부담스러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을 위해 순교하는 것은 무섭거나 부담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동안 순교를 무섭고 부담스러워했던 이유는 우리가 아직 예수님을 아는데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우리는 더욱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고, 예수님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예수님의 말씀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어렵고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것이 우리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순교라는 단어가 무섭고 부담스러운 단어가 아니라, 우리가 간절히 소원하고 사랑하게 되는 단어가 되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 됨의 축복 속으로
오늘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가 얼마나 친밀한 관계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이 하나인 것처럼 예수님과 우리도 한 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 됨'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내가 인생의 깊은 실패를 경험할 때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때도, 세상이 나를 버릴 때에도,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고 나를 위해 목숨 버리신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분의 강함이 나의 연약함을 덮고, 그분의 지혜가 나의 어리석음을 채우며, 그분의 완전함이 나의 불완전함을 감싸 안습니다.
예수님과 우리가 한 몸이라는 이 진리는 단순히 교리적인 선언이 아닙니다. 이 진리는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변화시킵니다. 죄와 싸울 때 그분의 능력이 나의 약함을 덮고, 유혹 앞에서 그분의 거룩함이 나를 지키며, 절망 속에서도 그분의 부활이 나에게 소망을 줍니다. 우리가 넘어지고 실패해도, 그분의 의로움이 나를 온전히 덮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 것입니다. 이 '하나 됨'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참된 자유와 만족을 경험합니다.
이 관계에 잘 어울리도록 우리가 예수님을 더욱더 인격적으로 잘 알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매일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삶 속에서 그분과의 친밀한 관계를 쌓아가십시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처럼 살아갈 수 있게 되고, 이 땅에서 행복하게 천국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 안에서, 오늘 하루도, 그리고 평생토록 주님과 동행하며 승리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더욱더 예수님을 잘 알아가게 하옵소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더 묵상하며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게 하시고, 더욱더 말씀에 순종하는 큰 기쁨과 감사를 누리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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